20. 요한계시록 19장 / 큰 두 잔치
이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나라의 군대를 멸망시키실 때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의 절정을 설명한다.
1. 하늘의 기쁨의 찬양 (계 19:1-10)
하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다시 오실 것을 예상하므로 네 번에 걸친 “할렐루야 합창”을 한다. 할렐루야라는 말은(헬라어로는 “알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며, 친숙한 구약 용어이다. 하늘은 왜 기뻐하는가?
1) 죄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1-4절)-
18장에서 땅의 상고들과 임금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탄식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하늘이 즐거워하고 있다. 바벨론은 모든 종교적인 사기와 혼란의 근원이었으며 하나님의 성도들을 무수히 죽였는데, 이제 바벨론은 멸망 받았다. 사실상 바벨론의 몰락이 하늘에서 세 번의 “할렐루야”를 부르게 한다.
2)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기 때문이다(5-6절)-
하늘의 모든 음성들이 그가 하나님이신 것과 보좌에 계신 것 때문에 연합하여 찬양하는 것 같다. “전능한”이란 “모든 것에 능하신”이란 뜻이다. 헨델이 그의 웅장한 “할렐루야 합창”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좌에 계심을 인하여 찬양을 드리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다.
3)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기 때문이다(7-10절)-
“이르렀다”는 단어는 “채워졌다”고 번역될 수도 있다. 신부는 이제 아내(7절)가 되며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게 된다. 이것이 왕이나 주인의 혼인 잔치가 아니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강조하고자 하시는 한 칭호는 “어린 양”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에 대한 그의 사랑과, 교회를 값주고 산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는 이 잔치를 위하여 자신을 “예비했어야” 한다. 모든 “흠과 티”가 없어졌던 때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을 동안이었다(엡 5:25-27). 신부는 선한 행위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늘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늘나라에 가면 신자들이 섬김에 있어서 충성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이다.
8절은 아내가 성도의 의(義), 곧 “성도의 의로운 행위”를 옷 입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충성에 따라서 상을 주실 것이며, 우리가 받는 상급이 그대로 “혼인 예복”을 꾸밀 것이다. 레만 스트라우스(Lehman Strauss)박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부가 어린 양과의 혼인 기약이 차면 우리들 각자가 손수 만든 혼인 예복을 입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얼마나 숙연한 생각인가!
물론 신부와 신랑은 혼인 잔치에 초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늘나라에서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받는 자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는 아니면서도 그 영광에 참여할 구약 성도들이다.
2. 하늘에서 온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들 (계 19:11-16)
4장 1절에서 하늘이 열린 것은 교회를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하늘이 열린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로 개선의 출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판받을 때에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천군을 보내어 자기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영광된 군대들, 곧 구약 성도들, 교회, 그리고 천사들과 더불어 말 타고 나아가신다(마 25:31/살전 3:13). 6장 1절에서는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흰 말을 탔었지만 여기서는 “충신과 진실이라” 하는 자가 심판과 전쟁을 위하여 말을 타고 나아가신다.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겸손한 나귀를 타지 않으시고 사나운 흰 군마를 타고 계신다. 그의 눈은 예루살렘을 보셨을 때와 같은 눈물에 젖어 있지도 않으며 모욕적인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계시지도 않는다. 그의 원수들에게 옷을 벗기우는 대신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계시는데, 이는 심판과 승리를 의미한다. 땅에 계실 때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버렸지만 이제 하늘의 군대들이 정복하는 그를 따르고 있다.
그의 입은 “은혜의 말씀”을 하지 않고(눅 4:22) 도리어 승리와 공의의 말씀을 하신다(사 11:4 참조). 그는 철장으로 다스리러 오신다(시 2편). 그는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마겟돈전쟁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기 위해 오신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세상의 군대들이 짐승과 그의 군대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팔레스틴에 모이게 되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나, 이들은 하늘에서 인자의 징조를 볼 것이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려고 모두들 연합할 것이다. 다시 요한계시록 16장 12-16절과 14장 14-20절을 읽어 보라.
3. 땅에 임할 심판을 고함 (계 19:17-21)
본 장에서는 두 잔치를 본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9절)와 하나님의 큰잔치, 곧 아마겟돈이다. 첫 잔치는 축복과 기쁨의 시간이나 둘째 것은 심판과 슬픔의 시간이다. 모든 인류사는 아마겟돈을 향하여 급히 이동해 가고 있다.
천사는 땅의 군대들이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고한다. 사실상, 전쟁은 길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원수를 즉각적으로 쳐부술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1장). 이 부분에서 “고기”(육신)란 말이 반복되어 나오는데, 그것은 사람이 고기(육신)일 따름이며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울 수가 없다는 뜻이라는 데에 주목하자.
“육신”이란 아담의 타락 이래로 문제의 근원이 되어 왔다. 육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육신을 정죄하셨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육신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싸운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왕들과 장군들과 장사들”이라 해도 만왕의 왕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대항하기 위해 모여질 군대는 어떤 자들인가? 이들은 유럽 연맹의 열 왕국과 동방의 왕들과 애굽과 러시아의 군대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틴에 있는 에스드렐론(Esdraelon)평지에 모이는데, 나폴레옹이 이곳을 세계 최고의 천연적 전쟁터라고 한 지역이다. “아마겟돈”이란 말은 “므깃도의 산”이란 뜻이다. 지도에서 이곳을 찾아 보라.
그리스도는 말씀,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원수들을 멸하신다(히 4:12). 사람들은 그의 말씀에 복종치 않았고 복음을 영접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들은 그와 동일한 말씀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한다. 짐승을 따르는 사람들은 “표를 받은 사람들”이며, 몸에 짐승의 표가 있는 것은 분명히 심판을 받는다는 인이 된다. 그리스도는 짐승의 군대를 멸하실 뿐만 아니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사로잡아 산 채로 지옥에 던지신다. 그는 또한 사단을 취하여 무저갱에 던지신다(20:1-3).
구약 선지자들은 이 큰 전쟁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사 63장/ 슥 14장/ 욜 2-3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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