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요한계시록 21-22장 / 우리의 영원한 본향
본 두 장의 주제는 21장 5절에 진술된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본 장에 나오는 상세한 사항들을 많이 다루는 것이 흥미도 있고 유익도 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 주된 “교훈들”을 다루는 데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새것들”을 주목하자.
1.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2)
헬라어로 “새로운”이란 말은 “특성이 새롭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죄악 되고 파괴적인 모든 것이 제거됨으로써 옛 하늘과 옛 땅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후서 3장 7-10절을 살펴보면 불의 심판이 옛 창조에 이런 갱신을 가져온다고 되어 있다.
“없어졌다”는 말은 “파괴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구절이며, 그것은 요한이 섬에 유배되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의 삼분의 이가 물이다. 그러므로 새 창조에서는 땅에 물을 공급함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할 것이다. 2절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2. 새 하나님의 백성 (계 21:3-8)
우리가 영원한 상태로 들어갈 때 거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광스럽고 친밀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인격적으로 지내실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죄를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지만(창 3장) 이제 그 저주는 제거되었다(22:3).
하나님께서 “이루었도다”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도다”하신 말씀과 평행을 이룬다. 창조를 시작하셨던 그 동일하신 주님이 또한 창조를 완성하실 것이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다(헬라어 알파벳 첫자와 마지막 자).
그러나, 8절은 이 새 창조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이들은 두려워하는 자들 또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못한 겁쟁이들,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들, “군중과 함께 다니다” 죄를 행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목록의 처음에 “겁쟁이”를 두신 것에 유의하자! 사람이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데 두려워하면 그 결과로 범하게 되는 어떤 종류의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3. 새 예루살렘 (계 21:9-27)
2절은 이 하늘의 성이 천년 왕국 동안에 땅 위에 떠다니다가 새 창조가 시작되면 내려올 것이라고 제시한다. 이 성은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되며, 또한 신부로 보이게 된다. 당신은 17장에 나오는 바벨론 체제가 음녀로 묘사된 한 성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결국 성이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창세기 4장 17절에서 반역한 가인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떠나 한 성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믿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다“(히 11:10). 이것이 그 성이다.
그 성이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 곧 이스라엘과 교회를 연합시키는 것에 유의하자. 왜냐하면 이스라엘 지파들이 문들에 이름이 새겨 있고 열 두 사도의 이름이 기초석에 새겨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2장 20절과 마태복음 19장 28절을 참조하라.
성의 규모와 그에 대한 묘사는 우리의 상상을 어리둥절케 한다. “네모가 반듯하다”는 말은 “사면이 같다”는 뜻이며, 아마도 성이 완전한 입방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지성소”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이것이 피라밋같이 사각뿔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지 성은 사방 2,400km로 측량되며 미국의 삼분의 이에 해당한다. 보석의 아름다운 색들은(18-20절)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은혜”를 암시한다. 이 보석들의 색에 대해서는 사전으로 조사해 보라.
이 성에는 몇 가지 빠진 것들이 있다. 성전, 자연의 빛, 그리고 밤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인격적으로 거하시기 때문에 성전은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의 영광은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을 대신한다. 성경에서 밤은 죽음, 죄, 슬픔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에서 죽음과 죄와 슬픔이 영원히 사라졌다면 밤은 있을 수 없다.
성문들은 도무지 닫지 않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이 새롭게 하신 우주의 어느 곳에서도 그 성에 들어갈 수가 있다. 땅에는 만국이 있을 것이다(24절/ 22:2 참조). 만국의 모든 영광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에게로 돌려질 것이다.
4. 새 낙원(22:1-5)
이러한 새 창조에서 하나님은 본래 처음 창조의 비극들을 모두 반전시키신다. 옛 하늘과 땅은 혼돈에 처해 있었으나(창 1:2), 이제 완전함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 있다. 에덴은 땅의 강이 있었는데(창 2:10-14) 여기는 놀라운 하늘의 강이 있다. 에덴에 있는 생명나무는 사람이 죄를 범한 후에 파수꾼이 세워졌으나(창 3:24), 하늘의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용할 수가 있다.
창세기 3장 14-17절에 보면 저주가 끼어 들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저주가 없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의 낙원을 떠나야 했고 매일의 양식을 위하여 수고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들은 완전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얼굴을 대한다. 처음 남자와 여자가 범죄하여 종이 되자 그들은 에덴에서의 그들의 왕관을 잃었다. 그러나 5절은 이 왕권을 다시 얻을 것임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이다.
현재의 피조계는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죄의 속박아래 신음하며 통곡하고 있다(롬 8:18-23). 그러나 어느 한 날, 하나님은 새 창조로 인도하실 것이며 우리는 영원토록 완전한 자유와 생명의 충만함을 누릴 것이다!
5. 마지막 메시지 (계 22:6-21)
이 책의 마지막에서 “그리스도는 내가 속히 오리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다(7, 12, 20절), “속히”라는 단어는 요한의 시대에 오신다는 뜻이 아니다. 이 단어는 “신속히”를 나타내며,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지체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를 알지 못하므로 예비하고 있는 것이 마땅하다.
다니엘 12장 4절에서 선지자는 이 책을 인봉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요한은 “때가 가까우니라”는 이유로 책을 인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다니엘의 말은 여러 해 동안 성취되지 않을 것이었으나, 요한의 예언은 곧 이루어질 것이었다.
11절은 죄인들이 변화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라는 논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17절에 나오는 초청은 하나의 조롱이 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11절은 계속되는 죄가 사람의 성품을 규정하고 그의 운명을 결정짓게 한다는 경고이다. 다니엘 12장 10절은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사람의 참된 성품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얻는 또 하나의 교훈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해 나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억지로 악하게 하거나 의롭게 하지는 않으신다(22:15/ 21:8).
이 책의 마지막 구절들은 간구와 기도와 약속이다. 7절과 12절에서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하셨고, 17절에서는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님께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신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보내는 또 하나의 초청이 있다. “와서 생명수를 마시라”는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기도는 요한의 말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의 기도이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은 우리의 매일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18-19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난하는 데에 대한 경고가 있다. 사단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첨부하거나 말씀에서 무엇을 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재난을 자초하는 것이다(신 4:2/잠 30:5-6 참조). 물론 요한의 시대에는 책들이 필사되었는데 필사자들은 이 자료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론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에 첨부하거나 그들의 신학 구조에 맞지 않는 것은 빼버리기도 한다.
이리하여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일들에 대한 책이 끝난다. 이 연구를 끝마침에 있어서 성령의 기도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핵심 성경 연구 (성경 전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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