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30(일)
주님의 침묵 앞에서 (시 77:1-9)
시인은 환난의 밤에 주를 찾고 기도하였지만 주께서 침묵하시자 밤잠을 설치며 할 말을 잃습니다.
주의 자비로우신 행사들을 기억하고 묵상할수록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시인은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시기만을 바라며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환난의 밤을 오직 주를 찾고 주께 손을 들어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새벽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준 상처를 아물게 하기에는 친구들의 위로는 너무 피상적이었습니다. 영혼의 밤은 깊어 가는데 내 목소리만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나날을 지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3,4절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할수록 평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숨이 나오고 심령이 상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그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솔직한 고백입니까? 기도와 묵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끝내 해명되지 않는 고난과 침묵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이해를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진통 속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새 지평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고난 주신 이유의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손쉬운 해답으로 간편한 위로를 주려고도, 얻으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5,6절
시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혹은 민족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던 옛적 일을 기억할수록 현재 하나님의 침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즐거이 찬양하던 기억이 신음 가득한 오늘을 더욱 절망스럽게 했습니다. 정반대로 변한 상황이 하나님의 변심과 변덕 때문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혜 받았을 때 우리에게서 그 은혜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듯이, 고난을 주실 때도 고난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태도가 아닐까요? 은혜보다도 은혜 주신 하나님 때문에 찬양하였다면, 고난 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만이 고난을 잘 인내하고 믿음을 지켜낼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7~9절
하나님의 행적이나 성품과 모순되어 보이는 현재의 상황은 시인의 마음 속에 많은 질문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솔직한 절망의 표현이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과 약속에 걸맞는 행동을 해주시기를 촉구하는 의도도 있습니다.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쏟아놓아 보십시오. 내 속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이고 음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말고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기도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주를 알고자 하는 열망만은 식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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