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07(월)
효과 없는 책망, 효과 있는 책망 (렘 3:1-5)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제 스스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징계를 받아도 돌이키지 않았고, 거짓 회개로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절
돌아오려고 해도 돌아올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인애와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었던(2장 2절) 선민이라도, 하나님께서 심판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한계와 인내의 길이를 내 신학적 잣대로 내 신념을 위해 자의적으로 늘이거나 줄여서는 안 됩니다.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비통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5절
우리에게 속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회개가 늘 하나님께도 회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이 늘 하나님의 귀에까지 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 어느 한 때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그 분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내 입술뿐 아니라 내 마음이, 내 마음뿐 아니라 내 손과 발과 온 몸이 주께 돌아올 때까지는, 내 기도를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이혼 후 재혼한 여인은 다시 본남편과 재결합할 수 없습니다(신명기 24장 1~4절). 하물며 불륜을 범하고 그것도 창기처럼 다수의 “연인”을 둔 이스라엘이 남편 하나님께 돌아올 길은 없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그치게 하여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만 한 분 참 창조주이심을 보여주었는데도, 창기의 두꺼운 낯을 한 이스라엘은 깨닫지도 못하고 부끄러워 할 줄도 몰랐습니다.
4,5절
하나님께서 광야 청년 시절의 인애와 사랑을 기억하게 하실 때는 들은 체도 않던 이스라엘(2장 2절)은, 심판이 현실이 되자 하나님을 “아버지”와 “애호자”(보호자 혹은 친구)로 부르며 그 호시절을 기억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진노를 풀어달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나무”를 아버지라 부르고 “돌”을 자기를 낳은 자라 부르는 자들입니다(2장 27절). 악은 멈추지 않았고,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고도 인간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처음 은혜와 처음 사랑의 “기억”을 통해 주님에게서 너무 멀리 떠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때, 그것은 늘 현재를 정당화하는 도구요 거짓 안전을 심어주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기도
잘못을 드러내시고 책망하실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영혼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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