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16(금)
거부할 수 없는 그러나 고통스러운 (렘 20:7-18)
선지자는 진퇴양난입니다.
소명에 충성하자니 태어난 날을 저주할 만큼 고통스럽고, 소명을 거역하자니 말씀의 불이 타올라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믿을 곳이 없었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7,8절
선지자에게 소명은 하나님의 설득에 따른 자발적인 동의인 동시에 주권자의 명령에 대한 거스를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매번 선민 이스라엘의 파멸과 멸망을 외쳐야 했고, 그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온 종일 끊이지 않는 비웃음과 조롱과 위협뿐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대로 현실은 평온했고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처럼 죄악이 무성하면서도 무탈한 때가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것과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 순종하기에 가장 어려운 시대일 것입니다.
9절
심판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자니 외적인 박해 때문에 괴로웠고, 포기하자니 말씀의 불(5장 14절)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태우는 듯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니 부득불 하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9장 16절). 순종이 늘 쉽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고, 그 유익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 정하신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10절
바스훌에게 “마골밋사빕”이란 이름을 주었지만 심판이 임하지 않자 선지자가 그 이름으로 조롱을 받습니다. 선지자는 자기 친구들마저 그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자기를 유혹하여 선지자직을 그만두게 하려고 노리고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소신껏 사역했지만 열매는커녕 배척과 배반을 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그것이 선지자의 길이었습니다.
11~13절
선지자는 절벽 같은 상황을 직시했습니다. 하나님과 친구들을 향한 미묘한 자기감정에도 솔직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묵상했습니다. 자기 심장과 폐부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 떳떳하다면, 하나님은 원수에게는 보복하시지만 자신은 구원하실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의 한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14~18절
선지자는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출생 자체를 저주합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절망입니다. 하지만 끝내 그는 하나님이나 부모는 저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한 그 절망이 결코 끝은 될 수 없습니다.
기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고 소명일지라도 순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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