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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그리스도의 십자가

제5장-죄에 대해 만족시킴 / 5-1. 마귀를 만족시킴

by JORC구원열차 2009. 11. 9.

제 5 장

죄에 대해 만족시킴(Satisfaction for sin)

 

십자가에 관한 신학 용어 중에서 가장 심한 비판을 받는 용어가 ‘만족시킴’(satisfaction)과 ‘대속’(substitution)이다. 일반적으로 satisfaction과 함께 atonement 역시 ‘속죄’라는 말로 번역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죄하시기 전에 어떤 종류의 ‘만족’이 있어야 하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신’(substitute)으로 우리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당하심으로써, 그 만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은 성경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원시적인 미신의 유물이며, 솔직히 정말 비도덕적이지 않은가?

 

5-1. 마귀를 만족시킴

 

몇몇 초대교회들은, 마귀의 능력과 십자가가 어떻게 마귀의 능력을 박탈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천박한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들 모두는, 타락 이해로 또한 타락 때문에 인류는 죄와 죄책의 포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귀의 포로가 되었음을 인식하였다. 그들은 마귀를 죄와 죽음의 주인으로 생각했으며, 이 폭군으로부터 예수님이 우리를 건져내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들이 세 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마귀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이사의 능력을 마귀에게 돌렸다. 그들은 마귀를 반란자, 도적, 찬탈자로 그리긴 했지만, 마치 마귀가 인간에 대한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도 그 의무를 제대로 만족시켜 주셔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4세기에 살았던 나치안추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는, 이런 사상을 철저하게 거부한 몇 안 되는 초기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모욕’(outrage)이라고 불렀다.

 

둘째, 그러므로 그들은 십자가를 마귀와 하나님 사이의 거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십자가는 마귀가 자기의 포로들을 놓아 주는 대가로 요구한 속전(ransom-price)이었으며, 하나님은 마귀의 권리를 양도받는 대가로 십자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처음 몇 세기 동안에 매우 유행하던 신념이었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거래를 속임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마귀가 자기를 자기 이상의 존재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마귀는 비록 우리 죄인들에게는 ‘사마의 세력을 잡은 자’(히 2:14)이지만, 무죄한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데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감으로써 무죄한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능력을 오용했으므로, 마귀는 그 능력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초대 교부들은, 인류를 속여서 불순종에 떨어뜨린 마귀는 자신도 속아서 패배를 당하게 된다는 생각에서 어떤 공의를 보았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부정한 행동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이론들이 갖는 영구적인 가치라면, 첫째로 그 이론들이 마귀(‘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눅 11:21)의 실재와 악의 그리고 그 세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이론들이 마귀가 십자가에서 결정적이고도 객관적으로 패배를 당함으로써 우리가 해방되었음을 선언한다는 것이다(우리는 그를 공격해서 이긴 ‘더 강한 자’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눅 1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은 그 이론들을 ‘참을 수 없고’, 기괴하며 불경스러운‘ 것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는, 하나님까지도 어쩔 수 없는 권리를 마귀가 우리에 대하여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바이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임이라는 생각은 제쳐두고라도 마귀와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필연적인 거래로 이해하는 생각은 배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