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그리스도의 십자가

11-1. 자기 부인

JORC구원열차 2009. 11. 19. 23:54

11-1. 자기 부인

 

첫째로, 자기 부인에 대한 요구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예수님은 이제 막 처음으로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분명하게 예고하셨다. 그분은 그 일이 ‘일어나야 할 것’임을 말씀하셨다(31절).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요 19:17)라고 쓰고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자신을 형장으로 가는 사령 선고 받은 사람의 입장에 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어깨에 십자가를 메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면,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오로지 한 군데, 즉 십자가 처형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십자가’는 화를 잘 내는 남편이나 성미 고약한 아내가 아니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죽음의 상징이다.

 

생생한 묘사를 통해 예수님이 나타내고 계신 것은 분명히 자기 부인이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 예수님에 대해서 행동한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부인은 우리 자신에게 초콜릿이나 케이크, 담배, 칵테일 같은 사치품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우리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는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또는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자기중심성이라는 우상 숭배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고 말했을 때 그는 똑같은 것을 언급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죽음과 부활에 대해 쓰고 있다. 이것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체험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 많은 혼란이 야기된다. 첫 번째는 죄에 재한 죽음과 그 이후에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삶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분과 연합한 덕분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주는 유익(그 죄사함)과 그분의 부활이 주는 유익(그 능력)을 둘 다 공유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회심/세례 시에만 일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아에 대한 죽음으로서, 이는 십자가를 비는 것, 부인하는 것,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 고행하는 것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죽음은 우리에게 일어난 그 무엇, 또 우리가 이제 ‘...으로 여기거나’ 또는 기억하도록 명령받는 그 무엇이 아니라, 비록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긴 하지만 우리 옛 성품을 죽이면서 의도적으로 행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실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이미 행했다. 그것이 우리가 처음에 행한, 또 계속적으로 행하고 있는 회개의 본질적인 측면이고 그것 없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러한 태도, 즉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세 번째 종류의 죽음과 부활, 그것은 우리 몸에 예수 죽인 것을 짊어져서 그분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고후 4:9-10). 분명 이것이 일어나는 무대는 우리의 육체이다. 그것은 그 육체의 허약성, 박해, 필멸성 등을 언급한다. 발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0-31), 그리고 “우리가 종일...죽임을 당케 되며”(롬 8:36)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끊임없는 육체적 연약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부활’, 곧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으로부터 오는 내적 활력 또는 갱신 역시 지속된다(고후 4:16).

 

요약하면, 첫 번째 죽음은 법적인 것이다. 그것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죽음(죄의 형벌로 인한 죽음) 안에서 그분과 연합함으로 죄에 대해 죽는 것이며, 그 결과 생겨나는 그분과의 부활은 의롭다 함을 받은 죄인들이 향유하는 새로운 자유의 삶으로 이끈다. 두 번째 죽음은 도덕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옛 성품과 그것의 악한 소욕을 죽임으로써 자아에 대해 죽는 것이며, 그 뒤에 따르는 부활은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의로운 삶으로 이끈다. 세 번째 죽음은 육체적인 것이다. 그것은 무사 안일에 대한 죽음,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우는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부활은 우리의 연약함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예수님의 능력이다. 법적인 죽음은 ‘단번에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지만, 도덕적, 육체적 죽음은 그리스도인 제자들이 날마다, 심지어 매순간 끊임없이 겪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