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25(수)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도자들과 아는 에스라(스 9:1-8)
바벨론에서 돌아온 지 4개월 후에 에스라는 이 백성이 가나안 족속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옷을 찢고 기도하면서 이 공동체의 죄를 아룁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8절
다 멸절하셔도 마땅한데 소수라도 남겨주셨습니다. 귀환과 성전 건축과 정착은 긴 수치의 역사에 비하면 잠깐의 은혜고, 긴 종살이에 비하면 간신히 살아난 수준이었습니다. 그 은혜가 크고 더 이루실 기대도 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더 얻을 것이 없기라도 한 듯 경거망동하고 배은망덕했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넉 달 만에 경악할 만한 소식을 듣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여인들과 혼합결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증한 일을 꾸짖고 바로잡아야 할 제사장과 레위인도 참여하고 있었으며, 방백과 고관들은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성전 지을 일념으로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자원하여 귀환한 자들이고, 성전을 지어올린 사람들 아닙니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동화되어 가는 모습이 내게는 없습니까? 특히 지도자들이 시대를 잘 분별하고 타협이나 물러섬 없이 담대히 맞서도록 기도합시다.
3,4절
에스라는 그다지도 쉽게 은혜를 저버리고 패역의 길로 돌아간 백성들 소식에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성전 없이 이방 땅에서 서러운 시절을 보내던 때가 얼마 전인데, 그새 치욕도, 회복의 은총도 잊어버린 백성들을 보고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것을 부끄러움으로 알고 아픔으로 여긴 이가 에스라 혼자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방 민족과의 결혼을 금하는 하나님의 말씀(출 34:11-16; 신 7:3)을 기억하고 떠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말씀을 떠날 때 기억도 떠나고, 은혜도 떠나고, 분별력도 떠납니다. 부끄러움을 잃을 때 하나님도 잃습니다.
5~7절
정작 가증한 일을 하는 이들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데,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도 에스라는 얼굴을 못 들 만큼 부끄러워했습니다. 운명 공동체인 이 백성이 조상들이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당했을 때와 똑같이 악행을 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명예가 손상되는 일을 가슴 아프게 여길 줄 아는 민감한 영혼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기도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할 수 있는 영혼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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