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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그리스도의 십자가

13-2. 성숙한 거룩함

by JORC구원열차 2009. 11. 26.

13-2. 성숙한 거룩함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숙한 거룩함으로 이끄는 길이다. 우리는 “그것은 그분을 위한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일 수 있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과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느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구원이 되시고”(히 5:8-9; 참고,히 7:28).

 

두 구절은 모두 예수님이 ‘온전하게 되신’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고, 양자는 모두 완전케 되는 과정을 그분의 ‘고난’의 덕으로 돌리고 있다. 히브리서는 그분의 죄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분이 ‘텔레이오스’(tevleio"), 곧 ‘성숙하게’ 되시기 위해서 더 깊은 경험과 기회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특별히 그분은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 그분은 결코 불순종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그분의 고난은 그분의 순종하게 되는 시험대였다.

 

만일 고난이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성숙하게 되시는 수단이었다면 죄 많은 우리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인가. 주목할 만하게도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과 관련해서 ‘온전함’ 또는 ‘성숙함’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스도에게 있어 고난이 순종을 통해 성숙으로 이끌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있어 그것은 인내를 통해 성숙으로 이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텔레이오이, teleioi)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참고, 롬 5:3-5).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 비슷하게 만들려는 그분의 목적을 이행함에 있어 고난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생생한 묘사를 전개한다. 이 묘사들은 자기 자녀를 훈계하는 아버지, 은과 금을 단련하는 금속 세공사, 포도나무 가지를 쳐내는 정원사 등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묘사는 이미 신명기에서 나타나는데, 거기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이 비유는 잠언서에서 다시 취급되는데, 거기서는 아버지의 징계가 자기 자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잠언의 구절들은 히브리서에 인용되어 있고,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향하신 예수님의 메시지에 되풀이되고 있다. 히브리서에 나온 본문이 가장 길다. 그것은 아버지의 징계가 참 아들을 사생자와 그분지어 준다고 가르친다. 곧 하나님은 우리를 오직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즉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기’ 위해 징계하신다는 것이며, 당시에는 징계가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데 실로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어떤 사람들은 징계에 대하여 반역하기 때문에), 그것에 순종하여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 번째 묘사, 곧 은과 금을 단련하는 자로서의 묘사는 구약에서 세 번 나타나는데, 거기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단련의 장소는 ‘고난의 풀무’였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으며, 베드로는 그것을 ‘여러 가지 시험’으로 우리의 기독교 신앙을 시험받는 것에 적용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겠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의 금보다 더 귀한 신앙이 순전한 것으로 입증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세 번째 묘사는 예수님 자신이 포도나무 비유에서 전개시키셨는데, 거기서 가지가 열매를 잘 맺는 것은(이는 것의 틀림없이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가에 좌우될 뿐 아니라 또한 그것들이 포도나무 가꾸는 사람이 그 가지를 쳐내는 것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가지치기는 관목이 가지를 쳐내어 들쭉날쭉하고 거의 벌거벗은 채 있게 될 때처럼 종종 잔인하게 보이는 철저한 과저이다. 하지만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올 때, 거기에는 많은 열매가 맺힌다.

 

고난은 인내를 증진시키며 믿음을 단련시킨다. 또한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그를 ‘자고하지 않게’ 해준 경우에서처럼 겸손함을 개발시킨다. 그리고 호세아가 고멜에 대한 보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사란의 신실함과 인내를 알게 되었듯이, 통찰력을 심화시킨다.

 

“죄를 위한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속죄이고, 둘째는 우리 영혼을 개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난은 우리의 신체적 요구를 진압시켜 주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