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28(토)
죄를 떠난 공동체 (스 10:9-44)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모인 귀환자들에게 이방인 부인과 자녀들은 모두 보내라고 명령하고 백성들은 순종의 맹세를 합니다.
이어서 맹세한 대로 이행한 이들의 명단이 등장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9,13절
찬비가 내리는 가운데 귀환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모두 3일의 기한을 지켰습니다. 백성들은 찬비에 떨었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도 떨었습니다. 매년 반가이 기다렸던 “이른 비”였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인 이 비가 이날엔 은혜를 망각한 자신들을 후려치는 매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10,11절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들 앞에 선 에스라는 조금도 에두름 없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죄와 단절할 것을 명령합니다. 청중들이 불쾌해하지 않을 만한 요구를 고민하지 않았고, 죄와 동거하면서도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길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끊든지 공동체에서 끊어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선 지도자였기에 죄 앞에서, 사람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명백한 죄에 대한 애매한 처방을 피합시다. 거짓 위안으로 죄를 합리화할 길을 열어주지 맙시다.
12~14절
이방인 아내와 자녀들을 끊으라는 명령에 백성들은 순종합니다. 하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이를 맡아 처리할 방백을 세우고 정당한 재판을 거쳐서 결정하게 해달라고 제안합니다. 시간을 벌려는 의도보다는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면서도 철저하게 이행하려고 제안한 듯합니다. 옳은 일이라고 서두르거나 다그치기보다는 여러 의견을 경청하여 가장 좋은 길을 찾아갑시다.
15절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4명에 불과했지만, 공동체 전체가 회개하고 죄를 끊어도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반대기에, 이것은 소신이 아니라 의와 거룩에 대한 완강한 저항이었습니다. 죄를 지적받을 때나 권면을 들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16~44절
석달 동안 조사한 끝에 이방인 아내나 자녀들을 보낸 사람 113명의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이름들이지만, 거룩한 신앙공동체를 위해 아내와 자녀를 떠나보내면서까지 우상과 결별한 이름들입니다. 죄의 대가가 얼마나 아픈지 그들만큼 절절히 느낀 사람들은 드물 것입니다. 이 고통을 겪지 않으려거든 어서 죄와의 동거를 끝내십시오.
기도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죄를 버리고 주께 흡족한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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