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장]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
[내용개요]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몰려와서, 집 앞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복잡했다. 그 와중에 네 명의 친구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와서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려서 예수의 치유를 받게 되었다(1-12절). 예수께서 바닷가로 나가 무리를 가르치신 후에 세리인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제자를 삼으시고, 그의 집에 가셔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다(13-16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대답하셨고(17-22절), 안식일에 밀밭의 이삭을 잘라먹은 것과 관련해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대답하셨다(23-28절).
[강 해]
본장에는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과 함께 그 분의 크신 능력과 명성을 질투하는 유대 지도자들의 비난과 배척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율법의 참 뜻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마가는 본장을 통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적개심을 품기 시작했고 그 적개심이 자꾸 발전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예수와 서기관
1)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심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메고 찾아왔지만 많은 사람들로 인해 주님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자 급기야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주님이 계신 방 안에 중풍병자를 들여보냈습니다.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리고 가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그들의 확신은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를 사하시고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a. 예수의 소문을 들은 자들(눅18:35-38)
b. 침상에 누운 환자(마9:1-2)
2) 논쟁을 벌이는 서기관들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그 자리에는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사라고도 불리는 율법 학자들입니다(참조, 마22:35눅7:30). 그들은 예수님께서 먼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는 것에 대해 신성 모독죄로 정죄했습니다. '참람하도다'라는 말의 뜻이 그것입니다. 서기관들의 왜곡된 저의를 간파하신 예수님은 곧 중풍병자에 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즉시 주님의 치유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중풍병을 말씀으로 고치신 예수님은 바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고자 치유 선고를 하신 것입니다.
a. 예수를 시험하려는 의중(눅5:21-22)
b. 깨닫지 못하는 자들의 의논(막8:17)
3) 세리 레위를 부르심
주님은 바닷가에서 무리들을 가르치신 후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제자 마태의 본명입니다. 마태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의 이름으로 보입니다. 그는 헤롯 안디바의 영토였던 가버나움 근처의 세리였습니다(참조, 눅5:27). 가버나움은 당시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다메섹, 두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통로였습니다. 빌립의 영토인 데가볼리에서 헤롯 안타파스의 영토로 들어서는 첫 성이므로 관세를 받는 세관이 있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정부의 세금 징집 사무를 청부 맡은 유대인들로서 억압과 착취로 치부하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민중의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주님의 권위 있는 부르심에 레위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a. 이방인과 같이 취급되는 세리(마18:17)
b. 순종은 성도의 의무임(행5:29)
2.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예수
1) 잔치를 벌이는 레위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레위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레위가 베푼 잔치에는 세리와 죄인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기쁨의 자리를 만들어 예수님을 주빈으로 모신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에 주님을 모시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주님을 위한 레위의 잔치는 결코 돈이 많아서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 그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a. 예수께 잔치를 베풂(눅5:29)
b. 함께 먹고 마심(마11:19)
2)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불만
죄인과 세리와 더불어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행위는 의인으로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세리란 일반적으로 불의하며 또한 부자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미움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리는 창기와 더불어 죄인의 대표격이었습니다(참조, 마21:31). 그래서 그들에게는 죄인과 세리와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행위는 도저히 용납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힐난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a.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마15:6)
b. 영적인 진리에 무지함(요3:11-13)
3) 금식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서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신랑 친구들 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하지 않고 신랑을 빼앗길 때 금식한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금식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단지 위선적인 금식에 대해 비판하셨습니다. 금식은 진정 절실한 동기에서 시작해야 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a. 영혼의 순화를 망각한 금식(시69:10)
b. 복음 전파를 위한 바울의 금식(고후11:27)
3.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
1) 새 포도주
금식에 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생베 조각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의 비유를 통하여 낡은 옷으로서의 율법 종교와 복음에 의한 새 종교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력에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 종교는 본질적으로 종교가 아닙니다. 율법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력을 상실했을 때 그 터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의 생명력은 예수님에 의해 현실적으로 나타났습니다.
· 생명과 평강의 언약임(말2:5)
2) 논쟁을 벌이는 바리새인들
예수님께서 안식일 날 그의 제자들과 밀밭 사이로 지나갈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례를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의 위법을 힐난했습니다. 유대교의 지도 계층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참조, 마23:2),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으나 스스로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에게만 거룩하게 보이려 한 위선적인 종교로 타락한 것입니다.
a.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는 제자들(눅6:1-2)
b. 참 신에게서 떠난 자(렘2:35)
3)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바리새인들의 논쟁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들어 그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임을 주지시켰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여러 금지 규례를 정하신 것은 곧 인간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논쟁을 일축하셨습니다.
a.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하여 있음(고후4:15)
b. 안식일에는 생명을 구하는 인자(막3:4)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는 유대 지도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역에 협조해야 할 자들이 비난을 한 것을 통해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7절. 참람하도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일이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15절. 죄인들. 여기서는 이방인, 창기, 세리 등 유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신학주제] - 안식일.
예수의 병 고침의 사역은 안식일에 일어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한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피해서 병자들을 고쳐 주실 수도 있었을텐데, 바리새인들과의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까지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신 사건들을 보면 안식질의 의미가 병자 치유의 사건과 관련 있음에 틀림없다. 우선 안식일의 기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원래 안식일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 기원을 둔다. 하나님께서 제 칠일에 쉬셨으므로 우리도 안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시느라 피곤하셔서 하루를 쉬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천지 창조 후에 피조 세계를 복 주시고 창조 질서를 보존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후에 이러한 안식이 깨졌다. 죄로 말미암아 안식이 깨진 것이다. 여기서 구약 율법이 말하는 안식일의 의미를 잠깐 주목해야 한다. 출22:11에 의하면 창조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지만, 신5:15에 의하면 출애굽이 안식일을 지켜야 자는 이유이다. 출애굽을 구원의 상징으로 본다면, 죄악의 땅인 애굽에서는 안식이 없었으나 이제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은 후부터는 새롭게 안식의 의미가 인식된 것이다. 아담의 범죄 후 안식이 깨졌으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진정한 안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출애굽 사건이 증명해 준 셈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안식일 논쟁을 일으키신 것이다. 안식일은 모든 죄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고 태초의 창조 질서가 회복되는 날이다. 병과 죽음은 인간의 죄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일을 하는 것은 안식일을 죄로부터 거룩하게 만드는 구원 사역이다. 난적으로 말해서 죄로부터의 구원 없이는 안식일이 없다.
[영적교훈]
안식일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창조의 복된 상태를 누리는 것이다. 또한 모든 생업을 중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살아간다는 신앙 고백적 행동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다. 안식일은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다. 우리는 안식일을 장차 올 천국의 예표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을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거룩한 날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에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일과 선한 일들을 행하기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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