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장]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내용개요]
본장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에 해당한다. 공관복음의 내용이 객관적 성격을 띤 전기체인 반면 본서는 예수에 대한 주관적 해설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한 특징이 본장에 잘 나타나 있다. 신학적으로 로고스 개념이 등장하게 되고, 또한 생명이 특징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예수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하나 의 아들'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내용상 말씀 그 자체인 예수(1-4절), 증거자 세례 요한(6-8절), 참 빛이신 예수(9-13절), 말씀의 성육신(14-18절), 세례 요한의 증언(19-28절), 하나님의 어린양(29-34절), 첫 번째 제자들(35-42절) ,빌립과 나다나엘(43-51절)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본장은 요한복음의 서론으로서 영원하신 말씀이 성육신하여 세상에 거하시게 됨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례 요한에 의해 전파되어짐을 기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오시어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배척당하셨지만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1.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1) 창조주이신 말씀
사도 요한은 창조주이신 말씀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말씀이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만물이 그 말씀을 통하여 창조되었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었는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말씀은 생명의 창조주로서 죄악 가운데 죽어야 할 인간에게 어둠 속에서의 빛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 빛이 어둠 에 비추었으나 어둠이 그 빛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어둠 속에 헤매이는 죄인들에게 자신을 증거하여 믿게 하려 했으나 많은 자들이 그가 빛이심을 깨닫지 못하여 배척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a. 태초부터 계신 말씀(요일1:1)
b. 창조자와 함께 계심(잠8:29-30)
2) 빛을 영접하는 자의 영광
말씀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영접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빛을 영접하여 구세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육체적인 자손이라는 이유로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믿는 자들로 자기 백성을 삼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 난 자들입니다.
a. 하나님의 자녀라 칭하심(호1:10)
b.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됨(갈3:26)
3) 육신이 되신 말씀
창조주이시며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인간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요한은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인간들에게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하나님을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으로서 말씀의 성육신을 통해서 보다 명확하게 증거되었습니다. 인간은 성육신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a. 신성의 충만으로 육체에 거하심(골2:9-10)
b.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심(롬8:3)
2.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증언
1) 세례 요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 앞에 보내시어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준비토록 하셨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외치며 요단 강가에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요한에게 그 정체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냐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고 솔직하게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a. 세례 요한의 겸손(막1:7)
b.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함(사40:3)
c. 하나님이 보내신 엘리야(말4:5-6)
2)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요한에게 나오실 때에 요한은 예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전부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물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 소개하고자 함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 아래 종속시켰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 것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 위에 머무름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메시야임을 알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구속 역사를 성취하심에 있어서 주권적으로 치밀한 계획과 섭리 속에 진행시키셨던 것입니다.
a. 유월절 어린 양(출12:3)
b. 화목 제물이신 그리스도(요일2:2)
c. 대속물로 목숨을 주심(마20:28)
3.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
1) 안드레와 베드로를 부르심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사역 중의 하나는 나중에 예수의 제자가 되어 사도가 된 자들을 준비시킨 것이었습니다. 안드레와 또 한 제자가 세례 요한의 소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 사실이 이를 증거하여 줍니다. 본문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안드레와 함께 있었던 제자는 본서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안드레는 예수를 좇은 후 자기 형제인 시몬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게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이는 장차 베드로가 예수의 수제자로서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a. 사도가 된 안드레(마10:2)
b. 그리스도를 고백한 베드로(마16:16)
c. 예수가 제자를 취함을 기뻐하는 세례 요한(요3:29)
2)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심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인 빌립은 예수께 '나를 좇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빌립은 예수께 부름을 받은 즉시로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메시야를 만났음을 전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사렛과 같이 비천한 곳에서 어떻게 메시야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을 찾아가셨고, 나다나엘은 그분이 곧 메시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께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나다나엘은 예수를 만나자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쉽게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을 약속하시며 그러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 사도가 된 빌립(눅6:13-14)
b. 갈릴리에서는 선자자가 나지 못한다는 통념(요7:52)
c. 믿으면 영광을 보게 됨(요11:40)
결론
예수께서는 영원하신 창조주로서 이 땅의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 예수는 사람들과 자신의 증거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그분을 좇았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나타난 사랑과 낫아짐의 정신을 본받아 겸손히 행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태초. 창조 시기를 가리키는 창1:1의 태초와는 달리 본문의 태초는 구속사의 초월적인 근원을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계신 말씀임을 강조했다.
말씀. 원어 <lovgo":로고스>는 헬라인들에게 이성, 사상, 언어 등의 의미를 가진 철학적 용어였는데 요한은 그리스도를 가리킴으로 신성 또는 영원성의 의미를 나타냈다.
5절. 어두움. 어두움은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므로 말미암아 감각을 잃어버린 영적 사망의 상태를 의미한다.
9절. 세상. 원어 <kovsmo":코스모스>는 요한의 글에 200여 회 사용된 애용어로 하나님을 떠난 세상, 즉 불신 사회를 주로 가리켰다.
14절. 독생자. 원어 <kovsmo":모노게네스>는 사도 요한만이 사용한 특수 용어였는데 대신 관계로는 하나님과 동질이며 대인 관계에서는 하나님의 자녀 중 특수한 아들이다(참조,요20:17).
16절. 충만.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신 안에 수나 양에서 충분한 상태를 뜻하며 이로써 그리스도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며 완전함을 알게 된다.
28절. 베다니. 성경에는 두 곳의 베다니가 있는데 본 절의 베다니는 요단 강 동쪽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곳으로 현재 성 요한 수도원이 있으며 중요 성지로 인정받고 있다.
32절. 하늘로서 내려 와서. 성경에서 하늘은 두 가지 의미로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창공을 의미하며, 그 두 번째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참조,전5:2마5:16)을 말하는데,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의미하고 있다.
33절.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 죄성에 대한 깨달음과 회개를 촉구하므로 물 세례를 주는 요한의 사명과는 달리 죄인 된 인간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중생을 경험케 하는 성령으로(참조,눅3:16)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거한다.
34절.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의 별명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신성을 더욱 강하게 나타냈다.
41절. 메시야.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뜻이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로 번역되는데 당시 메시야에 대한 개념은 변천과 왜곡을 겪었으나(참조,막10:37,요6:15) 주님은 왕, 제사장 또는 중보자로 메시야에 대한 사역을 온전히 수행하셨다.
[신학주제] - 나사렛.
예수와 더불어 잘 알려진 곳으로서 이곳은 예수가 30여 년 동안 생활해 온 곳이기에 항상 예수의 이름과 함께 붙어 다니는 지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천시되는 마을이었다. 나사렛이란 명칭은 '거룩'이라는 뜻이지만, 그 곳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비교적 낮고 천박했다. 지리적으로는 갈릴리 지역에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북으로 91km, 갈릴리 호수에서 24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433m에 위치해 있다. 지형으로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이며, 기후는 온화했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서 볼 때 나사렛은 결코 자랑할 만한 곳이 못 되었다. 무식하고 성질이 괴팍하며 다른 도시의 문화적인 주민들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이러한 자연 환경과 주민 환경은 유대 사회에서 나사렛을 별로 중요하지 않는 마을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곳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예수는 이곳 나사렛에서 생활했을 뿐 아니라, 그의 공생애 기간에 이곳에서 이적도 행하시고, 천국 복음도 증거하셨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았다(참조, 마13:55-56). 하지만 이 나사렛은 예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런 곳이 되어 버렸다. 나사렛을 우리 나라식으로 표현하면 달동네가 될 수도 있다. 성도들은 외형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곳에서도 경건한 사람들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교훈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문제이다.
[영적교훈]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알리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떠한 분이 신지를 소중히 알려주었다. 즉 그리스도는 참 빛되신 생명의 주요,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요,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말씀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이름'을 즉,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인 '예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고자 복음을 기록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럴 때면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게 된다. 어떤 이는 권력자의 이름을, 어떤 이는 재산가의 이름을 찾는다. 그러나 인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빛으로 가득 차고 모든 일에 성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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